[최고령목보호수] 1000년 팽나무 63~67

애월읍 2008.02.13 11:50 Posted by 편집부 jejulife

 

최고령목보호수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1666

  오랜 세월을 온갖 풍상과 함께하며 기묘한 자태를 취하고 있는 이 팽나무는 도내 최고령 장수목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을의 상징수로 상가리가 설촌되기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곳을 지켜온 터주대감이다. 700여년전 상가리가 형성될 당시 이곳은 팽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차 울창한 군락을 이루므로써 '폭낭거리'로 유명했었다 하는데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100㎡의 면적에 높이 8m, 몸통둘레 5.7m, 수관직경 12.7m에 달하고 있는 이 팽나무의 형체는 2~3백년전 나무속이 동공화하기 시작하면서 1959년 제주를 강타한 사라호 태풍에 의해 쓰러져 지금의 누운형체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나무로 인해 상가리가 생겨났다고 하는데 바로 이 나무 옆에 차·주·현 성씨를 가진 3인이 움막을 짓고 생활을 시작, 지금의 상가리로 발전하는 시초가 되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최고령목보호수] 1000년 팽나무 63~67

200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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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리마을제] 동영상 포제단 56~62

애월읍 2008.01.31 14:47 Posted by 편집부 jejulife

납읍난대림지대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6호

보유단체 : 납읍리마을제 보존회


  제주도의 마을제는 남성들이 주관하는 유교식 마을제인 포제와 여성들이 주관하는 무속식 마을제인 당굿이 병존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납읍리는 전통적인 유림촌으로서 마을의 모든 민간신앙 의례는 유교식 색채가 강하다. 때문에 포제도 예전 그대로 유교적 제법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 제는 포신지위와 토신지우 및 서신지위 등 세신위를 모신다. 포신은 인물재해, 토신은 마을의 수호신, 서신은 홍역이나 마마신을 의미하는 신위이다.

  포제단은 금산공원 안에 있다. 매년 춘제는 음력 성월 초정일, 추제는 음력 칠월 초정일에 치르다가 30여년 전 마을 회의의 결의로 추제는 폐지되었다. 음력 정월 초정일에 마을이 부정하여 제를 치르지 못하면 그 다음 중정일 또는 해일에 제를 지낸다.





[납읍리마을제] 동영상 포제단


2007-7-15


[납읍난대림지대] 52~55

애월읍 2007.12.14 12:34 Posted by 편집부 jejulife





2007-7-15


[납읍난대림지대] 45~46

애월읍 2007.12.14 12:00 Posted by 편집부 jejulife

천연기념물 제375호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예로부터 양반들이 시를 짓거나 담소를 나누는 곳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원시적 식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지역에는 후박나무·생달나무·종가시나무 등이 상층목을 이루고, 하층에는 자금우·마삭줄 등이 자생하고 있다.

  평지에 남아 있는 보기 드문 상록수림 지대로 나무의 종류는 단순하나 전형적인 난대림상을 이루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서 문화재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납읍난대림지대] 45

200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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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시케월드] 세계최초 스토리 나비공원 팸플릿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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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시케월드] 세계최초 스토리 나비공원 팸플릿 앞면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
관람문의 064-799-9003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애월읍 2004.11.11 14:51 Posted by 편집부 jeju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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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파두리 항목유적지(사적 제396호)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의 역사적 의의]
  이곳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고려시대 후기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삼별초군이 이에 맞서 끝까지 싸웠던 호국 격전지이다.

[몽골군의 침입과 삼별초]
  몽골(원나라)은 세계 정벌의 일환으로 1231년(고려 고종 18년)부터 고려에 여러차례 쳐들어왔다. 고려는 몽골과의 싸움에서 밀리자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여러 해 동안 대항하였으나 끝내는 몽골에게 굴복하고 개성으로 환도하였다. 이에 배중손 등은 자주호국의 기치를 내걸고 고려를 몽골의 침입으로부터 끝까지 지키고자 1270년(고려 원종 11년) 6월 군사를 규합하고 대몽 항전을 결의하였다. 이때 중심이 되었던 군대가 바로 '삼별초'였다.

[삼별초군의 항전과 항파두리의 역사]
  강화도에서 진용을 정비한 삼별초군은 근거지를 진도로 옮겨 대몽항전을 펼쳤다. 그러나 1271년(고려 원종 12년) 5월 진도가 고려·몽골 연합군에게 함락하자 김통정 장군은 잔여세력을 이끌고 제주도에 들어와 이곳 항파두리에 진지를 마련하고 내·외성을 쌓았다. 특히 외성은 흙과 돌맹이를 섞어서 쌓은 토성으로 그 길이가 15리(6Km)에 달하였으며, 토성 위에는 나무를 태운 재를 뿌려서 연막전술을 폈다고 한다. 즉 적이 나타났을 때 말꼬리에 빗자루를 매달아 달리게 하면 자연히 재가 하늘로 날아 올라 연막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바닷가를 따라 3백여리에 달하는 환해장성을 쌓아서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몽골과 고려 조정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삼별초군이 굴복하지 않자 고려의 김방경과 몽골의 혼도가 이끄는 고려·몽골연합군 1만 2천여명이 1273년(고려 원종 14년)4월 함덕포와 비양도로 상륙하여 공격하였다. 삼별초군은 이에 맞서 혈전을 벌였으나 끝내 함락되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항전하던 김통정 장군은 붉은 오름으로 퇴각한 뒤 자결함으로써 몽골 침입이후 40여년에 걸친 삼별초군의 항몽투쟁은 끝이 났으며 제주도에서 최후까지 항쟁한 2년 6개월의 자취가 곧 이 항파두성 사적지이다.

[역사적 의미와 제주사회에 끼친 영향]
  몽골에 점령당한 제주도는 이후 목장을 경영하는 방식이나 언어와 생활습속 등에 몽골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또 삼별초군과 이들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에 들어옴으로서 토목과 건축기술, 양잠과 직조기술, 새로운 농경법이 보급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중앙의 문물과 제도, 불교 문화가 이곳 제주도에 전래되었다.

[항파두리에 얽힌 전설]
  이곳 항파두리에는 김통정 장군이 적군이 침입하였을 때 성에서 뛰어 내리면서 밟은 돌에 발자국이 생기고 또 그 곳에서 물이 솟아 나온다는 '장수물'과 삼별초군이 활쏘기를 연습할 때 화살을 맞아 자국이 생겼다는 '살 맞은 돌' 등 여러가지 전설들이 생생하게 전해오고 있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의 복원]
  항몽 최후의 격전지였던 이곳 항파두리가 호국항쟁의 정신도장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은 7백여년이 지난 1976년 9월 9일 제주도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면서부터이다. 1978년 6월에는 유적지 복원사업에 따라 항몽순의비를 비롯하여 전시관·관리사 등이 설치 되었고 1997년 4월 18일에는 국가 지정 사적 제396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삼별초군의 자주호국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면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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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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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몽유적지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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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귤나무

2008/09/24 - [애월읍/상귀리] - 고려시대 흙으로 쌓은 제주의 토성 항파두성
2008/06/01 - [애월읍] - [구시물] 4~9

[제주경마장] 말

애월읍 2003.05.12 04:08 Posted by 편집부 jejulife


제주경마장 여유롭게 노니는 말들의 모습입니다.
어린이날 가서 찍어서 경마 모습을 담지는 못 했습니다.